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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날

그해 6월, 대학생은 역사의 첫 손이었다 – 6.10 민주 항쟁과 저항의 용기

by cocori 2025. 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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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대학은 조용해 보입니다.
정치와 거리를 둔 교정, 변화보다는 스펙을 고민하는 캠퍼스.
하지만 불과 몇십 년 전,
이 땅의 대학생들은 목숨을 걸고 거짓을 부정했고, 사회를 움직였습니다.

1987년 6월,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섰습니다.
그러나 그 집회의 시작은 다수의 함성이 아니라,
몇 명의 대학생이 지하실에서 종이를 돌리던 손끝에서 시작됐습니다.
이 글은 그 손끝의 의미를, 그리고 그들이 오늘 우리에게 남긴 질문을 다시 들여다보려는 기록입니다.

 

6.10 민주항쟁 대학생들의 손길


‘책상을 탁 치니’라는 거짓말, 그리고 진실을 전하려 했던 사람들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3학년 박종철 열사의 죽음은 한 나라의 민낯을 드러냈습니다.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 끝에 숨진 그를 두고,
정부는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말을 발표했고,
주요 언론은 그것을 그대로 받아썼습니다.

이 말도 안 되는 거짓말에 가장 먼저 분노한 이들은 대학생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거리에서 외칠 수 없던 시대,
그들은 잉크와 종이, 그리고 등사기를 들었습니다.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이화여대, 한양대, 전남대,부산대, 조선대 등지에서는
학생들이 밤마다 몰래 모여 진실을 찍어냈습니다.


어둠 속, 무언의 손길로 만들어낸 목소리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지하,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 동아리방, 고려대학교 본관 뒤 창고등 
각대학교 그곳은 유인물 인쇄의 거점이었습니다.

학생들은 타자기로 원고를 쓴 뒤, 등사기로 복사해 수백 장의 유인물을 제작했습니다.
기계는 낡았고, 소음은 컸습니다.
한 장 한 장 돌려 찍는 동안 땀이 배었고,
누군가는 그 흔적을 지우기 위해 손에 묻은 잉크를 지우개로 문질렀습니다.

“무서웠어요. 걸리면 끌려갈 수 있었으니까.
근데 이건 해야 했어요. 우리가 아니면 누가 하겠어요.”
– 1987년 당시 고려대 학생의 회고

그렇게 제작된 전단에는
“박종철 고문치사 은폐 규탄”,
“전두환 퇴진”,
“직선제 개헌 쟁취” 같은 문구가 담겼고,
그 종이들은 교정의 나무에, 게시판에, 강의실 문에 붙었습니다.

낮에는 흔적조차 없이 사라졌지만,
그 문장들이 모여 결국 6월 10일, 역사적 항쟁의 불꽃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름 없이 움직인 자들이 만든 변화

6월 항쟁은 대통령 직선제를 이끌어낸 거대한 물결이었지만,
그 물결의 바닥엔 익명의 대학생들이 있었습니다.
이름도 남기지 못한 수많은 이들이
목소리를 내지 못한 시대에
자신의 이름 대신 진실을 들고 거리로 내보냈습니다.

그 중 누구는 졸업을 하지 못했고,
누구는 강제 징집됐으며,
누구는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지금의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연 초석이 되었다는 사실은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오늘, 그 피는 아직 흐르고 있다

많은 이들이 말합니다.
"요즘 대학생들은 조용하다.
민주주의를 누리기만 할 뿐, 지키려 하지 않는다"고.

그러나 최근, 윤석열 정부의 이른바 ‘계엄정국’ 논란 속에서
다시금 대학가에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정권의 권위주의적 움직임에 대해
침묵하지 않겠다는 선언,
자신이 속한 시대의 책임을 외면하지 않겠다는 행동.

서울대학교, 고려대학교, 연세대학교, 부산대학교 등
곳곳의 캠퍼스에서 다시 펼쳐진 촛불과 선언문은,
1987년의 그 등사기 돌리던 손들과 맞닿아 있었습니다.

‘그때처럼 우리가 다시 써야 할 문장이 있다면,
우리는 다시 쓸 수 있다.’
– 2025년 대학생 연대 성명 중


우리가 잇는 것, 우리가 지켜야 할 것

6월 항쟁은 과거의 영웅담이 아닙니다.
그저 박물관에 전시될 사건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지금 누리는 자유와 권리가, 결코 저절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현실입니다.
그리고 그 출발점에는,
‘학생’이라는 이름으로 시대를 응시한 이들이 있었습니다.

지금의 대학생들에게 이 기록이 가 닿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너무 평온해서,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처럼 보이지만
실은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외면하는가에 따라
앞으로의 자유는 유지될 수도, 잊힐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오늘도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아직 희망을 본다고.
대학생들의 용기가, 여전히 대한민국을 지탱하고 있다고.


참고자료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구술 아카이브, 『6월항쟁 참여자 구술집』
  • 『1987: 우리가 일으킨 기적』 (한홍구 외, 창비)
  • KBS 다큐멘터리 《1987 그날들》
  • 『거리에서 미래를 쓰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엮음, 후마니타스)
  • 고려대학교 1987 민주항쟁 회고 자료
  • 연세대학교 민학운동사 구술 모음집
  • 서울대학교 민주동문회 회고록
  • 『6월 민주항쟁 20주년 백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 2024~2025 전국대학생연대 성명서 모음
  • 오마이뉴스, 한겨레 등 주요 언론 기사 (윤석열 정부 계엄령 논란 관련 보도)

영문번역본 보러가기

When Students Led History – Remembering June 1987 and the Silent Courage of the You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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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Lie That Sparked a Nation, and the Students Who Told the Truth

pre2w.blogspo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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